<기고> 고일영 닐스학원장·애플북스 대표 = 문화(文化)를 즐기자

아들이 “우리는 왜 허구한 날 미술관, 박물관에만 다녀요?”라고 퉁명스럽게 묻는다.

주말은 물론 휴가 할 것 없이 여행코스에 미술관을 굳이 끼어 넣는 게 불만이다.

녀석은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차거나 간식을 먹으며 인터넷 LOL(롤)게임을 더 좋아 한다.

초등학생 때는 아내가 적당히 꼬드기면 이내 길을 따라 나섰는데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돈도 별로 들지 않잖아”라고 설득(?)시키지만 사실 우리 부부와 고등학생 딸은 그림, 도자기 감상. 연극 관람을 선호한다.

한가롭게 고궁을 거닐며 정담을 나누다 보면 일종의 뜨거운 연대감정과 문화적 동지의식도 느낀다.

나는 아들과의 관계향상을 모색한다.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 주고 휴게실을 나와 음료수에 찐계란 까먹는 정도가 아니라 함께 운동장을 찾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영화의 한 장면에 ‘우-아’ 탄성도 터트리고 싶다.

기왕이면 녀석이 환호하는 게임 캐릭터의 스킬까지 알아 내서 훈수라도 두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문화융성위원회에서 매월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날은 가족과 더불어 프로스포츠를 관람하며 몸소 현장에서 열기를 체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문화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람료를 낮추거나 무료로 개방한다.

경복궁·창덕궁을 비롯한 고궁이 무료로 입장되고, 영화도 할인된 금액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또 만만치 않은 금전적 지출을 요구하는 화려한 뮤지컬도 가끔 볼 수 있게 된다는 취지다.

그런데 하필이면 수요일일까? 한 달에 한번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이나 매주 ‘가족 사랑의 날’이 공교롭게 수요일이다.

혹시 이런 이유는 아닐까.

현대 미국 영어는 한 주의 가운데 자리한 수요일은 험프(hump, 낙타의 혹)이라고도 일컫는다.

주말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가야 할 태산준령이다.

장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다는 친구도 이 날은 교회를 찾는다.

일단 한 숨 돌리고 나서 목요일을 지내고 “오! 신이여 감사합니다. 금요일입니다.(Thank's God. It''s Friday. T.G.I.F)”라고 외치면 드디어 주말이 눈 안에 들어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바꿔 나갈 방법은 마땅치 않잖아요. 한 달에 하루는 뭔가 다른 삶, 다른 장면을 연출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라고 말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말마따나 가족을 늘 보던 가정이 아닌 색다른 무대에서 만나고 관람객, 관객, 관중, 열람자 등 다른 호칭으로 불려도 보고...

대통령도 잠시 틈을 내 애니메이션 ‘넛잡’을 관람하고, 대학생 새내기들과 창작 뮤지컬을 즐기며 머리를 식힌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번 ‘문화융성의 날’에 어느 운동장에서, 극장에서, 고궁에서 맘껏 문화를 향유하기 바란다.

‘나를 나타내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영화 베트맨Ⅱ에서)